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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 스포일러입니다.)

2004년작 '아무도 모른다'로 사회의 서글픈 한 단면을 보여줬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그의 담담한 표현방식과 주제의식을 너무 좋아했다.
(내가 본 최고의 일본영화가 아니였나 그렇게 생각한다.)

벌써 세월은 훌쩍 지나고 그 후 그에게 차기작 몇 작품이 있다는 것을 몇 달전에 알 게 됐다.
그리고 이제서야 다시 그의 이야기속으로 들어가본다.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하게 된 점은,

사람의 모습은 왜 이렇게 이율배반적인가!

그것이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 위함일까 아니면 자신을 감추기 위함일까?
이렇게 사는 것이 적절한 것인가 또 나 자신의 모습은 어떠한가이다.

바다에서 한 소년을 구출하고 익사한 한 의사가족의 장남을 위한 제를 지내려고 사람들은 모여든다.

각기 다른 생각과 의도를 가지고 그 집을 찾아온 사람의 겉모습과 내면의 다름을 보면서
섬뜩함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이게 더 섬뜩할 수 밖에 없는 건  너무 당연한 현실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서글프다.

온화하고 사람 좋아보이지만 타산적인 딸과 사위.
아무렇지 않은 듯 보이지만 과거의 기억에 대해서 부모님에게 서운함을 표현하지 못하는 차남과 며느리.
재미있고 평범해보이지만 독한 분노와 계산적인 모습을 속에 숨긴 어머니.
고집스럽고 답답하지만 사실은 속깊고 과거를 애뜻하게 바라보는 아버지.

그리고 아직은 순수한 아이들.

어떻게 보면 지극히 평범한 이들의 엇갈림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것은 그들의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과
결국 후회가 남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역시 삶에는 후회라는 게 남는다.
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조금이나마 적어지도록 최선을 다해봐야겠다.

처음 오프닝에 영화를 보면서 의사 아버지가 산책을 나가는데 구름다리를 한참 쳐다보다 지나간다.
영화는 나중에 그곳이 장남이 죽은 곳이라는 곳을 넌지시 알려준다.
아버지의 그 애뜻한 마음에 살짝 감동했다.


걸어도 걸어도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2008 / 일본)
출연 아베 히로시, 나츠카와 유이, 유, 키키 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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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의문의 몽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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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영화를 볼 때면 생각을 하게 되는데 오히려 그런 것이 머리를 혼란스럽게 할 때가 있다.
생각하지마, 그냥 봐. 그리고 그것을 즐기는거야.

사실 이 영화는 그렇게 보는 게 바람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영화를 보면 보고 난 후에
그 허무함을 이루어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영화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Inglorious Basterds는 흔히 말하는 대립과 화합의 구조가 아니다.
대립, 파괴 그리고 거기서 오는 통쾌함.
그것이 타란티노식 영화이다. 영화내의 거의 모든 인물을 깔끔하게(?) 마무리지어서 후에 기대심리라는 것은 없다.

나에게 눈에 띄는 점은 영화내에 한스 대령과 알도 중위라는 정치적 인물이다.
이 두 인물은 마치 각기 두 나라를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차갑고 냉정하며 주도면밀한 한스 대령.
다분히 감정적이고 선동적인 알도 중위.
그들의 대단한 장점은 그들이 대단한 달변가라는 점이다.
(영화의 특성상 대화의 중요성은 필수적이라 그럴 듯 싶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 한마디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장면이 많았다.
두 사람의 대화속에는 사람을 움직이는 말과 템포가 있기 때문이다. 대화의 흐름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한스 대령이 자신의 닉네임 'The Jew Hunter'을 즐기듯 알도 중위도 자신의 그룹을 'Basterds'라고 부르는 것을
서슴치 않는다. 이 두 닉네임은 자신이 아닌 자신을 혐호하는 다른 이들이 자기에게 붙혀준 닉네임이다.
그런데 그런 것을 즐기는 이들을 보면서 이들에게 왠지 모를 연관관계를 느껴지게 했다.
('종국에는 그들은 만나게 되겠구나.'라는 그런 숙명적인 느낌 말이다.)

비주얼적인 면에서 챕터 5의 오프닝 장면이 유독 인상깊었다.
검은색에 가까운 배경과 원색의 빨강 드레스를 입은 쇼산나의 모습은 마치 예전에 봤던 Sin City의 한 장면을
생각나게 하는 것 같다. 이 영화는 확실히 미국문화적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다.
내가 아마 70,80년대의 미국 영상 문화에 익숙했다면 보다 이 영화를 재미있게 감상하지 않을까 싶다.

Inglorious Basterds는 타란티노가 10 여년에 걸친 시나리오 작업으로 꽤나 유명했는데,
확실히 그의 스타일을 집대성한 것 같은 느낌은 든다. 하지만 반대로 이야기하면 독특한 점을 찾기 어려웠다는 말이 될 수 있다.
(이건 확실히 양날의 검과 같은 말이다. 대부분의 스타일리스트들은 자신의 스타일을 지키는 것 뿐이니까.. 내가 변화를 기대한다는
것이 어떻게보면 무리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갑자기해본다.)

한스 대령 역할을 한 Christoph Waltz가 영화를 내내 참 인상깊게 남았다. 참 능청스럽게 연기 잘한다.
간만에 외국배우보면서 감탄해본다.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2009 / 미국, 독일)
출연 브래드 피트, 다이앤 크루거, 크리스토프 왈츠, 멜라니 로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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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의문의 몽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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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2003년작 다큐멘터리 영화를 이제서야 보게 되었다.
모르는 걸 어쩔수 있나. 우연히 회사 동료 테이블에 있는 DVD가 눈에 띄길래 빌려와서 봤는데..
결론적으론 정말 훌륭한 영화였다.

현대 어느 자본주의 사회에서나 기업이라는 것은 존재한다.
예전에 드라마 '영웅시대'나 다른 경제 드라마를 봤을 때는 기업의 긍정적인 면에 대해서 보게 되었다.
기업에 종사하는 직원과 기업이 종속하는 국가를 살리는 게 기업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경제 논리안에서의 무한 경쟁과 국가간의 영역을 허무는 글로벌화에서 기업은
초국가적인 존재로 자리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기업의 존재와 가치의 이유는 이윤창출이다.
그리고 나아가 더 크게 규모를 부풀리고 많은 소비를 유도하고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서 비인간적인 행위, 환경 파괴, 부도덕한 행위를 서슴치 않는다.
기업이 오랜기간 살아남고 이윤창출하는 모습을 알게 되면 기업의 긍정적인 부분이 뭔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에 언급되었던 것처럼 재산의 사유화가 문제가 되었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안에 존재하는
기업의 문제인 것인가? 아니면 우리 사회 시스템 자체의 문제인가?

자본주의 대표적인 용어를 말해보겠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통제
토마스 홉스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어떻게 보면 이것은 인간의 부덕함을 인정하는 용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이 어떠한 행위를 하던지 사회 시스템이 돌아가게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이 용어들은 사회 시스템이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것 같은 합리적인 면모를 보인다.

하지만 그것으로 우리가 잃어가는 것은 그 사회의 인간 그리고 인간성이다.
어떤 것도 용인하는 이러한 시스템은 그 속의 인간을 자신도 모르게 더욱 더 비인간적 행위로 부추기고 있다.
왜냐하면 시스템 안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과 비슷하게 행동하며 살고 있으면 누구도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바로잡는 이는 없다. 이것이 그저 당연한 것이며 합리적인 것이라고 받아들게 된다는 것이다.

기업은 어느 한명의 소유로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존재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틀안에 일을 하고 있으며 또 그곳에 투자한다. 이들의 공통적인 목표는 같다.
'더 많은 이윤 창출'

과연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서 더 많은 이윤 창출을 목표로 달려가고 있는가?
나는 인간적 가치와 생존의 개념에서 벗어난 그들의 목표를 이해할 수 없다.

목적을 잃은 이들의 이익 생산 목표는 그저 사회 시스템의 실패로 말미암은
인간의 탐욕 본성, 그것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영화에 표현되었던 것을 인용해보겠다.
The corporation is a legal person, but an inhuman monster.

ps. 영화를 보면서 제레미 리프킨이나 여타 유명한 사람을 볼 수 있어서 참 신기했다.


자본 권력
감독 마크 아흐바, 제니퍼 아보트 (2003 / 캐나다)
출연 윈스턴 처칠, 프랭클린 딜레노 루스벨트, 요제프 스탈린, 미켈라 J. 미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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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의문의 몽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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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감독 봉준호 (2009 / 한국)
출연 김혜자, 원빈, 진구, 윤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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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극심한 스포일러가 될 소지가 있습니다.

이젠 상영년도가 작년이 된 봉준호 감독의 신작, 마더이다.
저번작 '괴물'부터 봉준호 감독은 상징적인 요소와 작품내에서 생각할 소재를 많이 내포하고 있는데
이번작도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조금은 복잡하기도 한 것 같은데 몇 가지만 언급해보고 평을 해보자.

1. 어머니의 존재와 사랑의 의미
누구나 나를 이 세상에 존재케 하신 어머니는 존재한다. 한국의 어머니는 자식에 대해서 무한한 애정과 관리에 힘쓰지만
그것은 의미가 모호한 상당히 맹목적이라는 것이다. 영화에서의 예처럼 자식에게 살인혐의가 있다면 거의 십중팔구
내 자식이 누명을 썼다고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라는 점이다.

2. 공권력의 비성실함, 무력함
봉준호작에는 꾸준히 다뤄지는 부분이다.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관은 자신에 이로운 방식으로 생각하며 행동하고
일을 처리한다. 그들이 약자의 입장에서 서줄리는 만무하다는 것이다. 입장이 바뀌었다면 과연 그럴수 있을까?
서글프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3. 빈틈많고 허무한 법체계
엄마가 고용한 변호사는 성공안전주의형 인간이다. 현실적인 그가 내린 판단은 죄를 인정하되 아들을 정신병자로
감형이 가능한 점을 강조한다. 같은 죄라도 정신병자라면 죄를 덜 받게 된다(?) 얼마나 황당한 법인가.
'나영이 사건'을 연상하게 하는 장면이였다.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봉준호 특유의 냉소적인 시각이 많이 돋보이는 영화이다.
그것은 관객이나 장르의 일반화에 대한 것도 포함하고 있다.
이 영화가 따라가고 있는 장르는 서스펜스이고 관객은 영화를 보면서 뭔가를 추리하고 싶어하고 결과를 예측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를 보면 알겠지만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가고 모든 것이 의미없음을 보여줬던 것 같다.
'스토리의 주인은 보여주는 화자인 감독이다.'라는 작가주의의 경향이 상당히 엿보였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 스타일은 개인적으로 '명탐정 셜록홈즈'를 연상하게 한다. 독자는 절대로 범인이 누구인지 짐작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스토리가 시간상의 배열로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 않으며 용의자의 폭이 상당히 넓기때문에
후에 어느 랜덤한 인물이 범인이 되도 이상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소년탐정 김전일'처럼 범인이 이 안에 있으니 추리해서 이 중에서 찾아보시라라는 관람자에 친근한 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쭉 보다보면 감독은 친절하게 모든 것을 다 보여준다.
기억하지 못하는 아들을 재촉해서 듣는 충격적인 가족사는 왜 극의 엄마가 아들에게 집착하게 되는지에 대한
당위성을 보여주는 듯 싶다. 하지만 후반에 엄마가 기대한 모든 것이 뒤틀린 후에 설정된 잔혹한 파국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극은 극일 뿐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영화내에서 캐릭터는 상당히 독특하고 모호한 부분이 많았다.
어떠한 캐릭터도 선하거나 악하다고 평할 수 없다. 또한 어떠한 캐릭터도 정상적이거나 비정상적이다고 평할 수 없다.
(* 인간사 사실 누구도 이것을 평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모두 그저 미묘한 차이일 뿐...)
제 각기 때로는 선하고 정상적이며 때로는 악하고 비정상적으로 행동한다.
아쉬운 건 영화내에서는 (파격적인 스토리를 위해서 그랬겠지만) 악하고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부분이 훨씬 많다.

영화는 전혀 지루하지 않지만 계속되는 반전과 비상식적인 전개에 몰입도는 떨어졌고 '살인의 추억'과 같이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도 아니다. 의도대로(?) 거리감이 느껴졌고 스토리가 비정상적인 전개에 의해 잔혹했던 부분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영화를 보는 뒷맛은 씁쓸하다. (이게 공감의 포인트인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하지만 오프닝과 엔딩은 깊이 인상이 남을만큼 뛰어났다고 평하고 싶다.
(어느 신인 감독이나 그렇지만 봉준호 감독도 '살인의 추억'을 뛰어넘는 후속작 나오기는 어려운 듯 싶다.
조금씩 아쉬움만 더해가는 듯...)

-

힘들고 지치는 인생사, 무엇이 남겠는가.
아픔과 상처의 기억을 지운다. 그리고 춤추고 미쳐 그들과 함께 놀아보노라!


ps.
딱히 영화보면서 연기는 평할 생각없지만..
극을 이끌어 가는 김혜자, 비교적 짧은 씬에도 진구의 역은 강렬했다. 봉준호 감독은 원빈에게 미안해 하셔야 할 듯;
상갓집에서 묘한 교차 시퀀스도 기법상으로 꽤 독특하고 멋졌다고 생각이 들지만 그냥 패스.
마지막으로 메인테마로 들리는 음악 너무 좋은데 역시 '이병우'라는 이름이 올라온다.
개인 앨범 좀 나왔으면 하고 소망해본다. 음악들을려고 영화봐야 할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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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의문의 몽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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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찌마와 리는 제가 생각하는 2000년 이후 한국에서 가장 암울하게 볼만한 영화가 없었던 해에 개봉했던 작품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가장 강하게 드는 느낌은 이 영화가 류승완을 한국의 쿠엔틴 타란티노라고 볼러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감독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예전에 가끔 류승완 감독이 영화 홍보를 하기 위해서 가끔 TV 예능프로에 나왔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도 가끔보고
그가 어떤 얘기를 하나 들어보왔지만 사실 그는 그냥 예능프로에서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 그다지 그 자신을
내보이진 않았습니다. 다만 이야기하는 면면이 영화를 참 좋아하고 영화를 많이 본 사람이구나라는 느낌은 들었죠.

쿠엔틴 타란티노는 제가 느끼기에는 대개 패러디나 자신이 좋아하는 감독의 오마쥬를 자신의 작품을 삽입합니다.
차용이라고 하기 뭐할 정도로 영화에 꽤 많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한 차용에서 머무르는 게 아니라
자신의 작품에 어울리게 변형되고 또 다른 의미를 부가하며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갑니다.

다찌마와 리는 오프닝부터 어느 영화에선가 많이 본 듯한 이미지를 가지고 시작합니다.
마치 '카우보이 비밥' 또는 '007'의 오프닝을 보는 듯한 등장인물 스틸사진과 이름이 등장하고 또 후에 등장하는 무기중에
하나인 표창이 부채모양으로 펼쳐지는 클로즈업이 나옵니다. 이건 마치 다른 영화(러셀 웨폰? 파이트 클럽?)에서 오프닝에
권총이나 칼을 클로즈업으로 등장했던 것을 연상하게 합니다.

이 소설이 원래 인터넷 소설의 원작을 기반으로 했다는 걸로 압니다만, 영화 다찌마와 리는 확실히 단순히
인터넷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 아니라는 것은 보는 중간 장면 장면마다 나타납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이 소설의 포인트를 잘 잡았던 것은 영화의 배경이 되는 장소가 한국, 만주라는 동양의 장소에서
한국이 일제시대를 겪으면서 서양의 문물이 들어와 혼합되는 역사적 시대에 놓여있었기때문에 동양 문화와 서양
문화의 만남, 그리고 퓨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기존의 영화들이 만들어 놓은 모든 이미지가 다찌마와 리에서는
스토리와 어울려서 가능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서로 다른 이질적인 문화의 퓨전을 영화에서 잘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처음 시작하면서 마치 첩보영화를 보는 듯한 미션 임파서블의 분위기를 풍깁니다. 후에 만주로 가면서 서부극,
그리고 마리와 함께한 미션은 마치 '007'이나 '오스틴 파워'를 연상케 합니다. 다시 다찌와리 리가 기억을 상실하고
나서 무술 연마를 하면서 다시 만나는 적이 한 손에 칼을 든 모습을 보고 외팔이 검객이라 외치죠.
이건 아마 김용 무협 소설 '신조협려' 양과를 지칭하는 말이였을 겁니다. 그 후에 만주 벌판에서 다찌마와 리와 왕서방 무리의
액션 씬은 흡사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을 연상시킵니다.

이 영화는 100% 후시녹음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인물은 연기자의 본래 목소리와 전혀 다르기도 또 후시녹음의
특성상 영상과 소리가 100% 매치되지 않습니다. 주의 깊게 들어보시는 분이라면 상당히 부조화적인 면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목소리에 치중하면서 배경소리를 아예 없애버렸기 때문에 관객 입장으로썬 어색하지만 대사에 더욱
치중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영화 방식은 이 작품이 원래는 영화가 아니라 연극을 보는 듯한 이미지를 그려냅니다.
또는 마치 텍스트를 이미지화한 느낌입니다. (어느 분이 류승환 감독을 이 영화를 보고 변사라고 불렀던데 그것과 비슷한
지적이다고 생각합니다.)

대사를 집중해서 듣게 되면 알지만 많은 대사가 특히 외국어를 한국어로 하는 것은 애드립같이 들립니다.
후시녹음을 해야하기 때문에 싱크를 맞춰야한다는 점때문에 결국에 이 같은 제작 방식이면 적어도 둘 중하나는
선택해야 될 겁니다.
1. 대본을 만들어놓고 배우가 대본대로 대사를 하고 나중에 성우가 대본 그대로 더빙을 한다.
2. 배우가 애드립을 하고 그걸 녹화, 나중에 성우가 녹화된 애드립을 듣고 더빙을 한다.
뭐 아예 그냥 촬영하고 입모양이나 추측으로 그냥 성우가 알아서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너무 프로답지 않은 선택인 것
같습니다. 결국 어느 쪽으든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과정일 것 같습니다.

다찌마와 리는 이런 모든 것을 아우르는, 어떻게 보면 류승완 감독이 좋아했던 영화의 이미지를 종합해보고
그러는 와중에 많은 것이 다시 퓨전이 된 영화인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보기엔 패러디 영화로 보기엔 너무 세련됐다는
느낌도 있습니다.(예전에 무서운 영화나 총알탄 사나이 이런 영화들과 비교해보자면요.) 모든 게 잘 어울려지고 또 그것이
한국적인 정서를 그리고 있는 것은 좋은 점이지만 류승완 감독의 스타일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임팩트가 좀 약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영화의 이미지와 다른 영화의 이미지의 대립이나 조화가 없이 각각의 씬마다 마치 이벤트처럼
여러 장면이 차용된 것이 아쉽네요.)

3.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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