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42024  이전 다음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Redux: (주로 문학이나 영화에서) 되돌아온, 복원된.

왕가위 감독은 내가 감독의 Filmography를 꼼꼼히 살피면서 영화를 찾아보는 유일한
감독이다. 미국에서 My Blueberry Nights 제작이후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작년에 1994년작 동사서독 (Ashes Of Time)의 Redux 버전을 발표했다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알게됐다.

동사서독이라는 작품은 사실 왕가위 자신에게 상당한 좌절과 시련을 가져다준 작품으로
유명하다. 장국영을 비롯해 양조위, 양가휘, 장학우, 임청아, 장만옥, 왕조현이라는 중화권 톱배우들을 모두 출연시키는 파격적인 캐스팅에 제작기간은 2년을 넘어가도 언제 끝낼 수 있을지 몰랐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이 작품의 제작도중에 가볍게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동안만에 만든 중경삼림(Chungking Express)는 그를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로 오르게 만들고 다시 이 작품도 끝마치게 되는 계기를 갖게 된다.

왕가위 인터뷰를 읽게되면서 이번에 Redux 버전을 만들게 된 시발을 알게 되었는데,
원래는 간단한 복원을 원했는데 자신이 원래 필름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결국 세계
곳곳에 흩어진 필름들을 다시 수거하고 그것을 복원시키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100% 복원은 불가능하다는 결론하에 다시 재편집을 감행했다고 한다.

전작을 100% 복원이 불가능한 탓에 상영시간도 10여분 짧아졌지만 그대신 몇 컷을
CG나 복합적인 처리를 통해서 교체했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왕가위 자신이 원래
이런 컷을 원작에 넣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사실 이번작이 원작보다 더 나아졌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감독이 이르길 원작이 다섯개의 구성을 이루고 있다면 Redux에서는 4개의 구성으로 같은 주제를 더 명확하게 묘사하고 있다고 말한다.

"바람이 잔잔하니 깃발이 고요하다. 심란한 사람의 마음속이 이와 같다."
- 이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가 검색을 통해서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불가 육조단경에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는데, 두 스님이
바람이 불어 깃발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한 스님은 바람이 움직인다고 말하고 다른 스님은 깃발이 움직인다고 말하면서 다툼있어 스승에게
묻자,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움직이는 것은 당신 마음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결국에 사물을 봄에 있어
주관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위의 말은 이것을 거꾸로 이해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다시 풀어보면 '판단할 수 없고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영화속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모두 운명에 어긋난 사랑을 하며 그에 대한 아품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등장인물의
삶은 다시 그들 주변의 인물들과 밀접한 연관 관계를 가지고도 있다는 것을 영화를 끝까지 보게 되면 알게 된다. 하나의 어긋남이 또 다른
어긋남의 계기가 되고 이런 차륜적인 관계는 영화내의 거의 모든 인물들을 비탄의 삶으로 몰아넣고 있다.

만약 누군가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자신을 어긋난 인생을 바꿀 수 있겠는가? 그리고 또한 다른 사람의 삶까지도...
인간의 힘으로 그것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영화는 그 모든 것이 불가능할 것같은 운명론에 힘을 싣는다. 그리고 결국 의지할 수 있는
피난처는 자신의 기억을 지우는 술, '취생몽사'일 뿐이다.

왕가위 감독의 작품에는 항상 '시간'이라는 중요한 요소가 자리잡고 있다.
시간은 항상 타이밍이라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삶을 어긋나게 하고 우리는 그것에 종속되어진 운명을 짊어지고 산다.
그리고 다시 시간은 운명의 아픔을 잊게 만들어준다. 그는 '2046'에서 "사랑은 타이밍이다."고 말했지만 사실 인생 그자체가
타이밍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본다.

왕가위의 작품을 볼 때마다 항상 무엇을 중심으로 봐야될 지 그것에 대한 의문에서부터 시작한다. 스토리? 스크립트? 아님 영상미학?
관람하는 사람마다 제 각기 자신의 스토리 분석, 스크립트 또는 영상를 분석한 자신만의 해석을 내어놓는다.
(사실 그것을 찾아읽어보는 것도 꽤나 재미있다.) 어짜피 내가 분석한다고 해서 잘 될리도 없을 것 같고 자신의 감상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것이 고작일 듯 싶다. 그래도 재미있는 점은 그의 영화를 볼 때마다 느낌과 생각이 조금씩 달라진다는 점이겠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장국영에 대한 회고이다. 우리는 얼마나 아름다운 배우를 잃었는가!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왕가위가 장국영을 회고하는 작품인지도 모르겠다.


- 왕가위 인터뷰 링크
CHUD.COM IGN.COM
Posted by 의문의 몽상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