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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영화를 볼 때면 생각을 하게 되는데 오히려 그런 것이 머리를 혼란스럽게 할 때가 있다.
생각하지마, 그냥 봐. 그리고 그것을 즐기는거야.

사실 이 영화는 그렇게 보는 게 바람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영화를 보면 보고 난 후에
그 허무함을 이루어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영화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Inglorious Basterds는 흔히 말하는 대립과 화합의 구조가 아니다.
대립, 파괴 그리고 거기서 오는 통쾌함.
그것이 타란티노식 영화이다. 영화내의 거의 모든 인물을 깔끔하게(?) 마무리지어서 후에 기대심리라는 것은 없다.

나에게 눈에 띄는 점은 영화내에 한스 대령과 알도 중위라는 정치적 인물이다.
이 두 인물은 마치 각기 두 나라를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차갑고 냉정하며 주도면밀한 한스 대령.
다분히 감정적이고 선동적인 알도 중위.
그들의 대단한 장점은 그들이 대단한 달변가라는 점이다.
(영화의 특성상 대화의 중요성은 필수적이라 그럴 듯 싶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 한마디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장면이 많았다.
두 사람의 대화속에는 사람을 움직이는 말과 템포가 있기 때문이다. 대화의 흐름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한스 대령이 자신의 닉네임 'The Jew Hunter'을 즐기듯 알도 중위도 자신의 그룹을 'Basterds'라고 부르는 것을
서슴치 않는다. 이 두 닉네임은 자신이 아닌 자신을 혐호하는 다른 이들이 자기에게 붙혀준 닉네임이다.
그런데 그런 것을 즐기는 이들을 보면서 이들에게 왠지 모를 연관관계를 느껴지게 했다.
('종국에는 그들은 만나게 되겠구나.'라는 그런 숙명적인 느낌 말이다.)

비주얼적인 면에서 챕터 5의 오프닝 장면이 유독 인상깊었다.
검은색에 가까운 배경과 원색의 빨강 드레스를 입은 쇼산나의 모습은 마치 예전에 봤던 Sin City의 한 장면을
생각나게 하는 것 같다. 이 영화는 확실히 미국문화적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다.
내가 아마 70,80년대의 미국 영상 문화에 익숙했다면 보다 이 영화를 재미있게 감상하지 않을까 싶다.

Inglorious Basterds는 타란티노가 10 여년에 걸친 시나리오 작업으로 꽤나 유명했는데,
확실히 그의 스타일을 집대성한 것 같은 느낌은 든다. 하지만 반대로 이야기하면 독특한 점을 찾기 어려웠다는 말이 될 수 있다.
(이건 확실히 양날의 검과 같은 말이다. 대부분의 스타일리스트들은 자신의 스타일을 지키는 것 뿐이니까.. 내가 변화를 기대한다는
것이 어떻게보면 무리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갑자기해본다.)

한스 대령 역할을 한 Christoph Waltz가 영화를 내내 참 인상깊게 남았다. 참 능청스럽게 연기 잘한다.
간만에 외국배우보면서 감탄해본다.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2009 / 미국, 독일)
출연 브래드 피트, 다이앤 크루거, 크리스토프 왈츠, 멜라니 로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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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의문의 몽상가
|

이미 2003년작 다큐멘터리 영화를 이제서야 보게 되었다.
모르는 걸 어쩔수 있나. 우연히 회사 동료 테이블에 있는 DVD가 눈에 띄길래 빌려와서 봤는데..
결론적으론 정말 훌륭한 영화였다.

현대 어느 자본주의 사회에서나 기업이라는 것은 존재한다.
예전에 드라마 '영웅시대'나 다른 경제 드라마를 봤을 때는 기업의 긍정적인 면에 대해서 보게 되었다.
기업에 종사하는 직원과 기업이 종속하는 국가를 살리는 게 기업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경제 논리안에서의 무한 경쟁과 국가간의 영역을 허무는 글로벌화에서 기업은
초국가적인 존재로 자리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기업의 존재와 가치의 이유는 이윤창출이다.
그리고 나아가 더 크게 규모를 부풀리고 많은 소비를 유도하고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서 비인간적인 행위, 환경 파괴, 부도덕한 행위를 서슴치 않는다.
기업이 오랜기간 살아남고 이윤창출하는 모습을 알게 되면 기업의 긍정적인 부분이 뭔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에 언급되었던 것처럼 재산의 사유화가 문제가 되었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안에 존재하는
기업의 문제인 것인가? 아니면 우리 사회 시스템 자체의 문제인가?

자본주의 대표적인 용어를 말해보겠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통제
토마스 홉스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어떻게 보면 이것은 인간의 부덕함을 인정하는 용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이 어떠한 행위를 하던지 사회 시스템이 돌아가게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이 용어들은 사회 시스템이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것 같은 합리적인 면모를 보인다.

하지만 그것으로 우리가 잃어가는 것은 그 사회의 인간 그리고 인간성이다.
어떤 것도 용인하는 이러한 시스템은 그 속의 인간을 자신도 모르게 더욱 더 비인간적 행위로 부추기고 있다.
왜냐하면 시스템 안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과 비슷하게 행동하며 살고 있으면 누구도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바로잡는 이는 없다. 이것이 그저 당연한 것이며 합리적인 것이라고 받아들게 된다는 것이다.

기업은 어느 한명의 소유로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존재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틀안에 일을 하고 있으며 또 그곳에 투자한다. 이들의 공통적인 목표는 같다.
'더 많은 이윤 창출'

과연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서 더 많은 이윤 창출을 목표로 달려가고 있는가?
나는 인간적 가치와 생존의 개념에서 벗어난 그들의 목표를 이해할 수 없다.

목적을 잃은 이들의 이익 생산 목표는 그저 사회 시스템의 실패로 말미암은
인간의 탐욕 본성, 그것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영화에 표현되었던 것을 인용해보겠다.
The corporation is a legal person, but an inhuman monster.

ps. 영화를 보면서 제레미 리프킨이나 여타 유명한 사람을 볼 수 있어서 참 신기했다.


자본 권력
감독 마크 아흐바, 제니퍼 아보트 (2003 / 캐나다)
출연 윈스턴 처칠, 프랭클린 딜레노 루스벨트, 요제프 스탈린, 미켈라 J. 미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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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의문의 몽상가
|

마더
감독 봉준호 (2009 / 한국)
출연 김혜자, 원빈, 진구, 윤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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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극심한 스포일러가 될 소지가 있습니다.

이젠 상영년도가 작년이 된 봉준호 감독의 신작, 마더이다.
저번작 '괴물'부터 봉준호 감독은 상징적인 요소와 작품내에서 생각할 소재를 많이 내포하고 있는데
이번작도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조금은 복잡하기도 한 것 같은데 몇 가지만 언급해보고 평을 해보자.

1. 어머니의 존재와 사랑의 의미
누구나 나를 이 세상에 존재케 하신 어머니는 존재한다. 한국의 어머니는 자식에 대해서 무한한 애정과 관리에 힘쓰지만
그것은 의미가 모호한 상당히 맹목적이라는 것이다. 영화에서의 예처럼 자식에게 살인혐의가 있다면 거의 십중팔구
내 자식이 누명을 썼다고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라는 점이다.

2. 공권력의 비성실함, 무력함
봉준호작에는 꾸준히 다뤄지는 부분이다.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관은 자신에 이로운 방식으로 생각하며 행동하고
일을 처리한다. 그들이 약자의 입장에서 서줄리는 만무하다는 것이다. 입장이 바뀌었다면 과연 그럴수 있을까?
서글프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3. 빈틈많고 허무한 법체계
엄마가 고용한 변호사는 성공안전주의형 인간이다. 현실적인 그가 내린 판단은 죄를 인정하되 아들을 정신병자로
감형이 가능한 점을 강조한다. 같은 죄라도 정신병자라면 죄를 덜 받게 된다(?) 얼마나 황당한 법인가.
'나영이 사건'을 연상하게 하는 장면이였다.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봉준호 특유의 냉소적인 시각이 많이 돋보이는 영화이다.
그것은 관객이나 장르의 일반화에 대한 것도 포함하고 있다.
이 영화가 따라가고 있는 장르는 서스펜스이고 관객은 영화를 보면서 뭔가를 추리하고 싶어하고 결과를 예측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를 보면 알겠지만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가고 모든 것이 의미없음을 보여줬던 것 같다.
'스토리의 주인은 보여주는 화자인 감독이다.'라는 작가주의의 경향이 상당히 엿보였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 스타일은 개인적으로 '명탐정 셜록홈즈'를 연상하게 한다. 독자는 절대로 범인이 누구인지 짐작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스토리가 시간상의 배열로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 않으며 용의자의 폭이 상당히 넓기때문에
후에 어느 랜덤한 인물이 범인이 되도 이상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소년탐정 김전일'처럼 범인이 이 안에 있으니 추리해서 이 중에서 찾아보시라라는 관람자에 친근한 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쭉 보다보면 감독은 친절하게 모든 것을 다 보여준다.
기억하지 못하는 아들을 재촉해서 듣는 충격적인 가족사는 왜 극의 엄마가 아들에게 집착하게 되는지에 대한
당위성을 보여주는 듯 싶다. 하지만 후반에 엄마가 기대한 모든 것이 뒤틀린 후에 설정된 잔혹한 파국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극은 극일 뿐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영화내에서 캐릭터는 상당히 독특하고 모호한 부분이 많았다.
어떠한 캐릭터도 선하거나 악하다고 평할 수 없다. 또한 어떠한 캐릭터도 정상적이거나 비정상적이다고 평할 수 없다.
(* 인간사 사실 누구도 이것을 평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모두 그저 미묘한 차이일 뿐...)
제 각기 때로는 선하고 정상적이며 때로는 악하고 비정상적으로 행동한다.
아쉬운 건 영화내에서는 (파격적인 스토리를 위해서 그랬겠지만) 악하고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부분이 훨씬 많다.

영화는 전혀 지루하지 않지만 계속되는 반전과 비상식적인 전개에 몰입도는 떨어졌고 '살인의 추억'과 같이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도 아니다. 의도대로(?) 거리감이 느껴졌고 스토리가 비정상적인 전개에 의해 잔혹했던 부분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영화를 보는 뒷맛은 씁쓸하다. (이게 공감의 포인트인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하지만 오프닝과 엔딩은 깊이 인상이 남을만큼 뛰어났다고 평하고 싶다.
(어느 신인 감독이나 그렇지만 봉준호 감독도 '살인의 추억'을 뛰어넘는 후속작 나오기는 어려운 듯 싶다.
조금씩 아쉬움만 더해가는 듯...)

-

힘들고 지치는 인생사, 무엇이 남겠는가.
아픔과 상처의 기억을 지운다. 그리고 춤추고 미쳐 그들과 함께 놀아보노라!


ps.
딱히 영화보면서 연기는 평할 생각없지만..
극을 이끌어 가는 김혜자, 비교적 짧은 씬에도 진구의 역은 강렬했다. 봉준호 감독은 원빈에게 미안해 하셔야 할 듯;
상갓집에서 묘한 교차 시퀀스도 기법상으로 꽤 독특하고 멋졌다고 생각이 들지만 그냥 패스.
마지막으로 메인테마로 들리는 음악 너무 좋은데 역시 '이병우'라는 이름이 올라온다.
개인 앨범 좀 나왔으면 하고 소망해본다. 음악들을려고 영화봐야 할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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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의문의 몽상가
|
요새는 영화보다 영화 소개 프로그램만 자주 보는 편인 것 같다.

오래간만에 좋은 느낌이 드는 영화 한 편을 소개받게 되어 보게되었는데
그것은 Cinema Paradiso (시네마 천국)으로 유명한 Giuseppe Tornatore 감독이
처음으로 내놓은 서스펜스물 The Unknown Woman이다.

최신작이라고 하기엔 출시된지 좀 지난 2006년작이다.

서스펜스는 본인이 영화 장르중에 가장 좋아하지만 어릴적에 너무 많이 보기도
해서 요즘 서스펜스작들은 질려서 반대로 거의 보지 않았었다. 오랜만에
괜찮은 서스펜스 영화를 보니 신선하다.

% 스포일러성 글이 될 수 있으므로 스포일러가 싫으신 분은 이 글을 보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선 이 영화를 보기전에 연상되는 것은 시네마 천국에 받았던 토르나토레 감독의 특성이다.
그것은 반전 그리고 휴머니즘이다.

당연히 과거 작품에 워낙 강한 인상을 받았던 관계로 그것을 떨쳐버리기란 관객입장에선 어렵다.
하지만 이번 작은 예상과는 다르게 수십년을 작품한 감독보다는 마치 신인 감독의 데뷔작을 보는 것처럼
영상이 감각적이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에는 아무래도 점프컷의 영향이 컷던 것 같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거의 배경설명없이 바로 사건으로 돌입하면서 시작한다. 사실 그런 점때문에 처음에 영화를 보면서
당황하게 되었지만 중간 중간에 나오는 점프컷으로 짧은 시간이나마 주인공의 비화를 예견할 수 있는 힌트를 건네준다.

이 점프컷이 대개 로맨틱함, 에로티시즘의 과거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영화에 몰입해서 보는 사람에겐 아마 싫은 요소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다만 이게 긴장감도는 상황과 묘한 대비가 되면서 좋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한 한번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면 지루함은 거의 없이 오히려 좋은 페이스로 극에 몰입하는 효과를 얻는다.
마치 50분 공부하면 10분은 쉬는 것처럼...

이 점때문에 The Unknown Woman은 서스펜스물로써 상당히 좋은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고 평하고 싶다.

내용은 조직폭력과 성매매에 대한 내용을 다룬 것인데 뭐랄까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TV 단막 드라마에서 비교적
많이 다룬 내용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동안 많이 봐왔던 드라마의 전개를 얘기해보자면 불우한 환경에서 실날같은 자신의 희망을 찾아서 최선을 다하지만
결국 자신이 쌓아온 과거는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못한다. 그리고 바램은 좌절되고 죽음으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이 영화가 다른 점은 비극적인 상황에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인지하면서도
다시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감독은 그것을 '인연'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 싶다.

비록 잘못된 만남으로 시작된 관계이지만 그 관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그 관계에는 미래가 있다는 것.
그래서 '인연'은 소중하다는 것.

서스펜스 영화를 봤는데 마지막 엔딩을 보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경우는 처음인 것 같다.
뭐랄까 '토르나토네 감독은 결국 자신의 주특기를 살렸다.' 그런 느낌이 든다.

정말 오랬만에 이탈리아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은 저들은 비록 서양인이고 저멀리 유럽에 살지만
동양인인 한국인과 정서가 참 비슷하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왠지 언젠가 이탈리아도 여행가고 싶다.

마지막으로 엔리오 모리꼬네 음악은 역시 두말할 나위없이 굿이다.
Posted by 의문의 몽상가
|
Redux: (주로 문학이나 영화에서) 되돌아온, 복원된.

왕가위 감독은 내가 감독의 Filmography를 꼼꼼히 살피면서 영화를 찾아보는 유일한
감독이다. 미국에서 My Blueberry Nights 제작이후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작년에 1994년작 동사서독 (Ashes Of Time)의 Redux 버전을 발표했다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알게됐다.

동사서독이라는 작품은 사실 왕가위 자신에게 상당한 좌절과 시련을 가져다준 작품으로
유명하다. 장국영을 비롯해 양조위, 양가휘, 장학우, 임청아, 장만옥, 왕조현이라는 중화권 톱배우들을 모두 출연시키는 파격적인 캐스팅에 제작기간은 2년을 넘어가도 언제 끝낼 수 있을지 몰랐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이 작품의 제작도중에 가볍게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동안만에 만든 중경삼림(Chungking Express)는 그를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로 오르게 만들고 다시 이 작품도 끝마치게 되는 계기를 갖게 된다.

왕가위 인터뷰를 읽게되면서 이번에 Redux 버전을 만들게 된 시발을 알게 되었는데,
원래는 간단한 복원을 원했는데 자신이 원래 필름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결국 세계
곳곳에 흩어진 필름들을 다시 수거하고 그것을 복원시키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100% 복원은 불가능하다는 결론하에 다시 재편집을 감행했다고 한다.

전작을 100% 복원이 불가능한 탓에 상영시간도 10여분 짧아졌지만 그대신 몇 컷을
CG나 복합적인 처리를 통해서 교체했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왕가위 자신이 원래
이런 컷을 원작에 넣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사실 이번작이 원작보다 더 나아졌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감독이 이르길 원작이 다섯개의 구성을 이루고 있다면 Redux에서는 4개의 구성으로 같은 주제를 더 명확하게 묘사하고 있다고 말한다.

"바람이 잔잔하니 깃발이 고요하다. 심란한 사람의 마음속이 이와 같다."
- 이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가 검색을 통해서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불가 육조단경에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는데, 두 스님이
바람이 불어 깃발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한 스님은 바람이 움직인다고 말하고 다른 스님은 깃발이 움직인다고 말하면서 다툼있어 스승에게
묻자,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움직이는 것은 당신 마음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결국에 사물을 봄에 있어
주관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위의 말은 이것을 거꾸로 이해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다시 풀어보면 '판단할 수 없고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영화속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모두 운명에 어긋난 사랑을 하며 그에 대한 아품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등장인물의
삶은 다시 그들 주변의 인물들과 밀접한 연관 관계를 가지고도 있다는 것을 영화를 끝까지 보게 되면 알게 된다. 하나의 어긋남이 또 다른
어긋남의 계기가 되고 이런 차륜적인 관계는 영화내의 거의 모든 인물들을 비탄의 삶으로 몰아넣고 있다.

만약 누군가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자신을 어긋난 인생을 바꿀 수 있겠는가? 그리고 또한 다른 사람의 삶까지도...
인간의 힘으로 그것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영화는 그 모든 것이 불가능할 것같은 운명론에 힘을 싣는다. 그리고 결국 의지할 수 있는
피난처는 자신의 기억을 지우는 술, '취생몽사'일 뿐이다.

왕가위 감독의 작품에는 항상 '시간'이라는 중요한 요소가 자리잡고 있다.
시간은 항상 타이밍이라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삶을 어긋나게 하고 우리는 그것에 종속되어진 운명을 짊어지고 산다.
그리고 다시 시간은 운명의 아픔을 잊게 만들어준다. 그는 '2046'에서 "사랑은 타이밍이다."고 말했지만 사실 인생 그자체가
타이밍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본다.

왕가위의 작품을 볼 때마다 항상 무엇을 중심으로 봐야될 지 그것에 대한 의문에서부터 시작한다. 스토리? 스크립트? 아님 영상미학?
관람하는 사람마다 제 각기 자신의 스토리 분석, 스크립트 또는 영상를 분석한 자신만의 해석을 내어놓는다.
(사실 그것을 찾아읽어보는 것도 꽤나 재미있다.) 어짜피 내가 분석한다고 해서 잘 될리도 없을 것 같고 자신의 감상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것이 고작일 듯 싶다. 그래도 재미있는 점은 그의 영화를 볼 때마다 느낌과 생각이 조금씩 달라진다는 점이겠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장국영에 대한 회고이다. 우리는 얼마나 아름다운 배우를 잃었는가!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왕가위가 장국영을 회고하는 작품인지도 모르겠다.


- 왕가위 인터뷰 링크
CHUD.COM IGN.COM
Posted by 의문의 몽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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