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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2003년작 다큐멘터리 영화를 이제서야 보게 되었다.
모르는 걸 어쩔수 있나. 우연히 회사 동료 테이블에 있는 DVD가 눈에 띄길래 빌려와서 봤는데..
결론적으론 정말 훌륭한 영화였다.

현대 어느 자본주의 사회에서나 기업이라는 것은 존재한다.
예전에 드라마 '영웅시대'나 다른 경제 드라마를 봤을 때는 기업의 긍정적인 면에 대해서 보게 되었다.
기업에 종사하는 직원과 기업이 종속하는 국가를 살리는 게 기업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경제 논리안에서의 무한 경쟁과 국가간의 영역을 허무는 글로벌화에서 기업은
초국가적인 존재로 자리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기업의 존재와 가치의 이유는 이윤창출이다.
그리고 나아가 더 크게 규모를 부풀리고 많은 소비를 유도하고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서 비인간적인 행위, 환경 파괴, 부도덕한 행위를 서슴치 않는다.
기업이 오랜기간 살아남고 이윤창출하는 모습을 알게 되면 기업의 긍정적인 부분이 뭔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에 언급되었던 것처럼 재산의 사유화가 문제가 되었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안에 존재하는
기업의 문제인 것인가? 아니면 우리 사회 시스템 자체의 문제인가?

자본주의 대표적인 용어를 말해보겠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통제
토마스 홉스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어떻게 보면 이것은 인간의 부덕함을 인정하는 용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이 어떠한 행위를 하던지 사회 시스템이 돌아가게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이 용어들은 사회 시스템이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것 같은 합리적인 면모를 보인다.

하지만 그것으로 우리가 잃어가는 것은 그 사회의 인간 그리고 인간성이다.
어떤 것도 용인하는 이러한 시스템은 그 속의 인간을 자신도 모르게 더욱 더 비인간적 행위로 부추기고 있다.
왜냐하면 시스템 안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과 비슷하게 행동하며 살고 있으면 누구도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바로잡는 이는 없다. 이것이 그저 당연한 것이며 합리적인 것이라고 받아들게 된다는 것이다.

기업은 어느 한명의 소유로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존재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틀안에 일을 하고 있으며 또 그곳에 투자한다. 이들의 공통적인 목표는 같다.
'더 많은 이윤 창출'

과연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서 더 많은 이윤 창출을 목표로 달려가고 있는가?
나는 인간적 가치와 생존의 개념에서 벗어난 그들의 목표를 이해할 수 없다.

목적을 잃은 이들의 이익 생산 목표는 그저 사회 시스템의 실패로 말미암은
인간의 탐욕 본성, 그것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영화에 표현되었던 것을 인용해보겠다.
The corporation is a legal person, but an inhuman monster.

ps. 영화를 보면서 제레미 리프킨이나 여타 유명한 사람을 볼 수 있어서 참 신기했다.


자본 권력
감독 마크 아흐바, 제니퍼 아보트 (2003 / 캐나다)
출연 윈스턴 처칠, 프랭클린 딜레노 루스벨트, 요제프 스탈린, 미켈라 J. 미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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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의문의 몽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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